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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쓴 글

프리젠테이션 및 실습

나는 1학년 1학기에 군대를 갔다가 1학년 2학기에 군대를 다녀왔다 

재수생과 학사경고를 맞았다는 조급함에 시간표를 억지로 채웠다

동기보다 군대를 일찍 갔다 왔기 때문에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고 모든 수업을 혼자 들었다

며칠 동안 아무와도 얘기한 적 없었던 적도 있었다

초조함과 외로움에 가득 차 학교를 다니던 시기였다


아무튼 수업 중에 '프리젠테이션 및 실습'이라는 고학년 과목을 수강했다

특이하게도 실습수업이어서 교수님은 수업을 거의 하지 않으셨고,

학생이 프리젠테이션 교재에 있는 내용을 한 파트씩 발표하는 방식이었다

대부분이 발표를 잘했고, 스티브 잡스 뺨치는 발표를 한 형도 있었다


중간고사 기간쯤 되니 어느덧 내 차례가 왔다

긴장을 많이 해서 내가 무슨 말 하는지도 모르고 발표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과제를 하는지 공부를 하는지 내 발표를 듣지 않았다

그래서 긴장은 점점 심해졌다


정신없이 발표하던 중 맨 앞자리에서 열심히 듣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

여자분이셨는데, 아마 누나였을 것이다

내 발표에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들어주셨다

나도 내가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 누나라고 내 말을 이해했을 리 없다


그 정신 없는 와중에 누나의 무언의 응원을 느낄 수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그 누나만 보고 발표를 했던 것 같다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지만 여전히 벌벌 떨었고 여차여차 발표를 끝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하던 것을 멈추고 진심없는 박수를 칠 뿐이었다

누나는 수고했다는 의미의 미소를 띠며 박수를 쳐줬다


돌이켜보면, 추운 날 오뎅 국물을 먹은 것 같이 마음이 따듯해진다

누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고맙습니다. 사막같은 학교 생활에, 단두대 같은 발표시간에 작은 위안이 되었습니다

나도 그런 누나처럼 작지만 적극적인 배려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